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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종영되었지만 TV 드라마였던 ‘서동요’의 주 촬영지는 부여였다. 그 사극의 시대적 배경이 백제였으니 그야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예전에는 야외 세트장에서 촬영이 끝나면 철거를 하였지만 요즘은 세트장이 하나의 관광 상품이 되어 각 지방마다 드라마 촬영지로 선택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고 들었다.
야외 세트장의 시초가 사극 ‘태조 왕건’을 촬영하였던 문경새재 오픈 세트장으로 기억한다. 주객이 전도되었다고 해야할까. 여행지가 우선이 아니라 그곳에 야외 세트장이 있어 그곳으로 여행을 한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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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마지막 왕궁터, 부소산성 | |||||||
부여 금강변 언덕에 자리한 부소산성(옛 사비성)은 백제의 멸망을 맞은 마지막 왕궁터이다. 백제가 고구려의 힘에 밀려 점차 남하하였고 현재의 공주(웅진)에서 부여로 도읍지를 옮긴 후 100년이 지난 후 백제는 멸망하였다. 그런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백마강은 오늘도 유유히 흐르고 있다. 부소산성의 출발점인 사비문을 지나 산성의 맨 꼭대기까지 울창한 소나무 숲이 이어져 걷기에도 무척 운치 있는 곳이다. 어떤 산성처럼 산을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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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암을 내려와 오른쪽으로 몇 개의 계단을 내려서면 고란초와 고란약수로 유명한 고란사이다. 고란초는 고사리과의 식물로 바위에 붙어 있는 이끼와 비슷해 보인다. 이곳에서만 서식을 한다고 하여 유명하지만 실제 우리나라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법당 뒤로 돌아가면 바위 동굴이 있는데 그곳에서 솟아나는 약수가 바로 고란약수이다. 물맛이 특별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고란초를 약수에 띄워 마시면 삼년씩 젊어진다는 전설이 전해올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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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탑에서 석탑으로 ‘정림사지오층석탑’ | |||||||
정림사지(定林寺址)는 정림사라는 사찰이 있던 자리로 부여 시내에 있는 폐사지이다. 안타깝게도 옛문헌이 없기 때문에 단지 이곳에 정림사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추정될 뿐이다. 정림사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정림사지 오층석탑이다. 목탑에서 석탑으로 발전되는 과도기에 세워졌던 탑으로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목탑은 말 그대로 나무를 깎아서 탑을 만들었기 때문에 디자인(형태) 면에서 조금은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탑신과 탑신 사이에 있는 옥계석의 끝을 고무신 코처럼 살짝 들어 올린다던지 그런 표현이 가능했지만 석탑을 목탑처럼 만들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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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목탑 | |||||||
흔히 말하기를 우리나라를 석탑의 나라로 부르고 중국을 전탑의 나라, 일본을 목탑의 나라라 부른다. 이 말대로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는 온통 석탑뿐이다. 벽돌로 쌓은 전탑과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모전석탑이 몇 기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탑이 석탑이며, 또 돌을 이용해 탑을 만들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경지에까지 도달했던 민족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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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익산 미륵사지에 있는 미륵사지탑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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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탑에서 석탑으로 | |||||||
미륵사지탑은 우리 역사의 등장한 최초의 석탑으로 알려져 있다. 목탑만을 만들던 사람들이 석탑을 만들었으니 당연히 처음에는 재료만 나무에서 돌로 바뀌었을 뿐이고 형태는 목탑의 형태를 그대로 계승해서 만들었음은 당연하다. 현재 복원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미륵사지탑을 보면 석탑인 돌집인지 구분이 쉽게 가지 않을 정도의 형태이다.
그러나 돌을 다루는 일은 나무를 다루는 일보다 훨씬 어려운 작업으로, 목탑 형태의 석탑을 만들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해서 석탑 형태의 변형이 시작된다. 과거의 목탑보다는 훨씬 간결한 형태의 탑이 필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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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만들어진통일신라 초기 석탑의 형태가 바로 경주 감은사지 삼층석탑이다. 규모가 큰 것은 통일신라의 힘을 과시하기 위함이었을 테고 삼층 탑신에 균형감과 비례감을 갖춘 것은 신라 장인의 솜씨였다. 그러나 감은사지탑도 높이가 무려 13m가 넘는 거대한 탑이었다.
이런 규모로는 탑 하나 만들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탑의 규모가 축소되고 대신 탑의 간결한 균형감에 더 비중을 둔 탑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그런 형태로 완성된 탑이 바로 불국사의 석가탑인 것이다. 탑의 높이는 삼층, 위압감보다는 간결함과 빼어난 탑신의 황금비례를 자랑하는 우리나라 고유의 석탑 형태가 완성된 것이다. 현재 제작되고 있는 석탑도 이 석가탑의 형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을 보면 통일신라시대에 완성된 석탑의 형태가 얼마나 완성도 높은 형태였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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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왕을 잉태한 연못, 궁남지 | |||||||
궁남지(宮南池)는 백제의 궁, 즉 부소산성의 남쪽에 있는 연못이다. 부소산성은 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왕이 폐망을 맞았던 곳이라면 궁남지는 의자왕의 아버지 무왕이 태어난 곳이다. 무왕은 태어나 왕자가 되지 못하고 서동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갔다. 어린 시절 그는 마를 캐다 팔았고 훗날에는 왕의 밀명을 받고 신라에 정탐병으로 침입하게 된다. 그곳에서 신라 증평왕의 딸이었던 선화공주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급기야 동네 아이들에게 서동요를 부르게 하여 궁궐 안에까지 이 노래가 흘러들어가게 한다. ‘선화공주는 밤마다 몰래 서동의 방으로 찾아간다네…’ 온 대궐 안에 소문이 자자해지자 결국 증평왕은 선화공주를 귀향보내고 기다리고 있던 서동은 선화공주를 백제로 데리고 온다. 그 후 서동은 무왕이 되었고 선화공주는 무왕의 왕비가 되었다. 그 시절 기록이 없으니 이런 내용이 드라마 서동요에서도 비쳐졌다. 그런 배경인 궁남지는 꽃피는 봄이면 야생화들이 피어 나들이 장소로도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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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로 안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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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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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박시설> | |||||||
부여의 숙박시설은 대부분 시내에 모여있어 그곳을 이용해야 한다. 아니면 부여에서 가까운 무창포나 대천으로 아예 장소를 이동하는 것도 좋겠다. 무창포나 대천이라면 콘도 시설과 찜질방 그리고 펜션 등 다양한 숙박시설을 이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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